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CHAGE and ASKA (문단 편집) ==== 데뷔 이후 ==== 1983년 이전 오오토모 유코(大友裕子)가 불렀던 곡을 작사를 새로 하여 가츠라기 유키(葛城ユキ)가 다시 부른 'ボヘミアン'(보헤미안)이 히트하면서 본격적으로 다른 아티스트에게 작사/작곡을 해주기 시작한다. 1987년 포니캐년으로 이적하면서부터는 작곡/작사의 폭을 더 넓히며 음악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된다. 이때의 작사/작곡가로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면 역시 [[히카루GENJI]]의 데뷔곡인 'STAR LIGHT'[* 작곡은 CHAGE와 공동 작곡], 두번째 싱글 'ガラスの十代'(유리의 십대),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히트곡이면서 일본레코드대상을 안겨준 'パラダイス銀河'(파라다이스 은하) 의 연속된 세 싱글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NctQK6fIUA|2004년 차게아스 데뷔 25주년 기념 'チャゲ&飛鳥 熱風コンサート'에서 'パラダイス銀河'를 처음으로 커버한 모습.(1:32초부터)]] [[https://www.youtube.com/watch?v=mqXuyqj_nH0|ASKA가 光GENJI에게 작사/작곡해 주었던 전곡 모음]] 1987년 첫 솔로 싱글 'MY Mr.LONELY HEART'를 발표하고 1988에는 첫 앨범 'SCENE'을 발표한다. 1989년에는 [[영국]] [[런던]]에 집을 마련하여 이듬해 6월까지 런던에서 거주하며 음악활동을 주로 런던에서 하게 되며 2001년까지 작사/작곡 및 녹음은 주로 런던에서 하게 된다. 당시 영국 거주를 시작하면서 '飛鳥'를 ASUKA라고 적었는데 주변 영국인 친구들이 '아슈카'라고 읽는것을 보고는 'ASKA'로 예명을 고치고 이에 따라 차게아스의 유닛명 역시 'CHAGE&ASUKA'에서 'CHAGE&ASKA'로 바뀌게 되었다. [youtube(74IKR0WeKXY)] 1991년 3월 6일 싱글 'はじまりはいつも雨'(시작은 언제나 비)를 발매한다. 원래의 싱글 예정곡은 [[나카모리 아키나]]에게 제공되었던 '予感'(예감)이라는 곡의 셀프커버가 될 계획이었는데 [[파나소닉]]의 CM송을 위해 부른 앨범버젼인 이 곡이 본디 싱글 컷의 예정이 없었지만 CM 방송 직후 곡의 문의가 엄청나게 밀려들며 부랴부랴 계획을 변경, 싱글 컷을 한 것이 그야말로 롱히트를 치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게 된다[* 예정없이 부랴부랴 싱글 컷을 한 곡이다보니 커플링 곡인 '君が愛を語れ(네가 사랑을 말해라)'는 평소 준비기간이 긴 ASKA의 싱글답지 않게 급조해서 만들어야만 했다. 특히 MV의 경우는 동시기의 차게아스의 다른 MV들과 비교해 봐도 정말로 급하게 만든 티가 역력하다[[http://cafe.naver.com/jpopchart/404|주소 참조]]. 본인도 이후 인터뷰에서 '너무 서둘러 만들었다.'고 인정했을 정도. 당시의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 [[걸프 전쟁]], [[소련]] 등 동유럽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 등으로 불안했던 세계정세에 대한 불안감이 가사에 드러나 있다.]. 이 인기에 힘입어 싱글 발표 후에 [[도호]]의 영화 'おいしい結婚(맛있는 [[결혼]])'의 주제가로 삽입되기도 하였고, 이후 [[여명(홍콩)|여명]], [[소년대]]의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등이 커버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솔로가수 ASKA를 대표하는 곡. 이와 함께 발표된 베스트 앨범 'SCENE II'역시 밀리언셀러를 찍으며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한다. 1995년 [[도시바]]EMI로 레코드 레벨을 옮기고 싱글 '晴天を誉めるなら夕暮れを待て'(맑은 날을 칭찬하려면 해질녘을 기다려)와 앨범 'NEVER END' 모두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한다. 1996년 [[코단샤]]에서 발행하는 잡지 'Views'와의 분쟁이 있었다. 당시 두번째의 아시아 투어도 성공하고 해외 아티스트들이 ASKA의 노래를 커버한 헌정 앨범 'one voice THE SONGS OF CHAGE&ASKA'가 발매되는 등 해외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Views 와의 인터뷰 후 기사제목이 'ASKA 고백, 일본에서는 모든것을 다 이뤘다. 목표는 아시아, 그리고 세계다.'(飛鳥涼激白、日本ではすべてやり尽くした。めざすはアジア、そして世界だ)로, 실제 인터뷰 내용과 기사 내용이 다른 것에 대해 ASKA 측은 이례적으로 전국판 [[아사히 신문]]에 '경고문'을 싣게 된다. 그러자 Views 측도 ASKA의 경고문을 '망언'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긴급게재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결국은 ASKA, Views 양측 다 이후 큰 문제제기 없이 사태는 그냥저냥 해결되는 모양새를 취했고 ASKA와 언론 간의 관계는 이때부터 크게 악화되게 된다.[* 2012년 무크지에서 이 사실을 후회하는 글을 싣기도 했지만 이미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뒤인 데다가 언론과의 사이는 크게 벌어져 있어서 별 도움이 안됐다.] 이후로도 차게아스 듀오로의 활동 외에도 개인 라이브 공연 및 아시아 투어 활동, 음반 활동도 꾸준히 계속해서 1997년 앨범 'ONE'을, 1988년에는 앨범 'kicks'를 발표하였고 이후 라이브 무대 위주의 활동을 진행하게 된다. 2005년 7년만의 정규앨범인 'SCENEIII'를 발표하였고 2009년 각자의 솔로활동을 위해 차게아스를 해산한 이후로도 왕성한 라이브 활동을 계속한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자돕기 모금을 위한 흘러간 명곡을 다시 커버한 'いま歌う'(지금 부르다) 시리즈가 [[iTunes Store]]를 통해 한정 발매되기도 하였다. 2012년 다시 7년만의 정규앨범 'SCRAMBLE'을 발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